내 생애 최고의 레이스 2025JTBC 42.195km
2025년 11월 2일
새벽 3시가 좀 지나 눈이 떠졌다.
샤워를 하고 챙겨진 짐을 들고 4시에 집을 나서
이번 대회에 페이스 메이커를 자처한 라파엘의 집으로 향했다.
그 곳에 승용차를 파킹하고
죽전역에서 출발하는 5시 첫차를 타고 상암으로 향했다.
지하철이 정차할 때마다 대회에 참가하는 러닝화 차림의 승객들이 늘어났다.
2번의 환승을 통해 상암 월드컵경기장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6시 50분.
역안에서 환복과 출전준비를 하고 짐을 규정 쇼핑백에 넣어 경기장으로 향했다.
9호차에 짐을 맡기고 근처에 있는 양띠클럽 친구들과 잠깐 기념촬영을 하고
라파엘과 함께 가볍게 몸을 풀었다.
8시정각에 장애인, 엘리트 순으로 출발했다.
D조는 8시 13분쯤 출발했다.
지하철 환승역에서 엘리스님을, 출발선에서 딸바요님을 만났다.
출발선에서 입고있던 우비를 벗어 던지고 본격적인 레이스에 돌입했다.
내가 믿는 것은 허리가 버텨주기를 바라는 기도와 페이스 메이커 라파엘이었다.
5km, 10km를 지나면서 페이스는 5분20초 전후를 유지했다.
허리에 신경쓰지 않을려고 딴 생각을 했는데도
잘되지 않았다.
사실 출발 때 서브4 뿐만 아니라 완주에 자신이 없어 한쪽 주머니에 교통카드를 챙겼다.
레이스에 경험이 많은 라파엘은 빈틈없었다.
달리면서 틈틈히 갱런후배들에게 화이팅을 외쳐주었고,
대로변의 응원단과 손을 마주치기도 했다.
나는 조심조심하며 오로지 레이스에만 집중했다.
날씨는 선선하고 좋았지만 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특히 강을 지날 때 바람세기는 더 강했다.
대각선에서 라파엘이 바람을 막아주었다.
10km가 지나면서부터는 나는 직선으로 달리고
라파엘이 지그재그로 달리며 음료대에서 스폰지와 물을 모두 공수해왔다.
오로지 내가 달리는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허리는 오히려 속도를 내야 하는 내리막 구간에서 찌릿찌릿함을 전해준다.
라파엘은 페이스를 일정하게 유지했다.
언덕을 올라갈 때는 숏피치를 주문했고
시선이 멀면 힘들다며 자신의 엉덩이만 쳐다보라며 엉덩이를 툭툭 치는 시늉을 반복한다.
20km 조금 못가서 첫번째 허리 통증이 왔다.
라파엘은 말은 최대한 자제하면서도 수시로 내 페이스와 몸상태를 체크했다.
살짝 허리에 묵직함과 찌릿함, 불편함이 오기 시작했지만
나는 괜찮다는 말로 안심(?) 시켰다.
이런 페이스메이커와 달려서 서브4를 하지 못한다면 평생 못할 것 같았다.
레이스나
삶이나 함께 하고, 의지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새삼 느낀다.
중간에 양띠클럽 친구도 만나고
주로 옆에서 응원하며 사진을 촬영하는 SGRC 멤버도 만났다.
중간에 지난해와 바뀐 구간도 라파엘은 알았지만 나는 몰랐다.
구의역을 지나고 잠실대교에 접어들면서 멀리 롯데월드 고층건물이 보였다.
지난해 잠실대교를 지나면서 페이스가 쳐졌다.
31km 지점에서 자원봉사하며 기다리는 민규 만날 생각을 하며 힘을 내었다.
조금씩 지쳐갔지만 그래도 반갑게 그를 만났고 동영상도 함께 달리면서 짧게 찍었다.
잠실새내역을 지나 수서IC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저멀리 경사가 가파르고 우측으로 돌아가는 고가가 보인다. 지난해 걸었던 곳이다.
라파엘이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며 엉덩이를 살짝 밀어주었다.
훨씬 쉬웠다. 덕분에 이번에는 걷지를 않았다.
1차 고비를 넘겼다.
대략 35km 지점에서 유턴하자 말자 용수기크루 응원단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허리에 아픔이 가중되고 목까지 통증이 타고 올라왔다.
동영상 촬영을 위한 엘리스, 데이지님의 달림도, 검심타조님의 외침도
레이스끝나고 동영상으로 알았다.
응원단을 지나면서 일그러진 내 얼굴을 보고
라파엘은 괜찮은지 계속 체크했고 옆에서 박수로 격려하기고 했다.
더 이상 뛰기가 힘들었다.
더 이상 괜찮다고 말할 수 없었다.
힘들어 하니 라파엘이 좀 걷자고 했다.
또 '여기서 무너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책과 실망감이 몰려왔다.
라파엘은 무리하게 페이스를 이끌지 않았다.
그냥 '조금만 더 해보자 형' 이라고 서브4에 연연하기보다
내 건강을 먼저 생각하고, 염려했다.
뛰면서 내 허리를 계속 문질러 주었고,
콜라, 레몬수 이것 저것을 챙겨주며 격려하고 도와주었지만
몸상태는 더이상 호전되지 않았다.
다시 뛸려고 하니 이번에는 왼쪽 대퇴부가 아팠고, 걷다가 다시 뛸려고 하니 오른쪽
종아리에 쥐가 날 것만 같았다.
5km 구간이 왜 이렇게 길고 긴건지....
이미 서브4는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졌지만 1.5km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서 왼쪽으로 꺾어돌면 골인지점이 보인다.
다시 뛰자고 했다.
걸어서 들어가기는 너무 아쉬웠다.
달리자고는 했지만 아마 옆에서 보면 빠르게 걷는 정도였을 것이다.
골인~
라파엘과 포옹을 했다.
갑자기 눈물이 쉴 새없이 쏟아졌다.
고통을 참고 달린 아픔의 눈물이었고,
4시간 동안 끊임없이 조언하고 챙겨주고 끝까지 함께 달려준
라파엘에 대한 감사와 목표를 이루지 못한 미안함의 눈물이었다.
서브4는 실패했다.
9월까지는 서브4가 목표였지만
10월 한달내내 허리통증에 물리치료를 받으며 자신감은 잃어갔다.
심지어 6일전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출전조차 반신반의했다.
주변에서 다 말렸다. 나가지 말라고....
포기도 용기라고...
라파엘과 함께 달리기로 약속하지 않았으면...
나는 아마 출전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대회전날 아버님이 응급실에 실려간 상황속에서도 밤늦게
출전을 결심해준 라파엘.
라파엘과 함께 달리지 않았으면
아마 하프도 못뛰고 중도포기하고 지하철을 타고 올림픽공원으로 갔을 것이다.
어쨋든 생애 3번째 풀을 완주했고 소중한 PB를 덤으로 얻었다.
몸관리 부실도 본인의 책임이고, 쥐가 올라오는 것도 연습량의 부족이다.
변명꺼리이고 핑게일뿐이다.
"4시간 4분 28초"
서브4나 330 하는 친구들에게는 보잘것 없는 기록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아마 이번 레이스보다 소중하고 감동적인 최고의 레이스는 내생애 더없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제 50대의 풀코스 도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어쩌면 나에게 마지막 풀코스 도전이었는지도 모른다.
2025 JTBC 마라톤 풀코스 도전에 격려와 응원과 염려를 해주신 모든 분들,
특히 최고의 페이스메이커를 해준 라파엘에게 다시한번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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